정들다는 말처럼 단단한 지옥은 없다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다.
정들이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날마다 감옥을 짓고,
무덤을 만든다.
감옥과도 같은 파리한 인생이 싫어서 우리들은 무언가에
정을 주고, 물을 주고, 싹을 기다리고,꽃이 피기를,
열매가 맺기를 기다리곤 한다
기다리는 것이 오기는 한다
하지만, 왔는가 싶으면 이내 스쳐 지나가 사라져 버린다.
기다리던 것들이란,
언제나. 그 반복속에서 우리가 갇혀 있는 정든 지옥을 바라보며
우리는 안정감을 느끼곤 한다.
어쩌면 안정감을 느끼기 위해서 애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것이 불안하기 짝이 없는 상태임을 안다.
불안의 얼굴을 힘껏 외면하면서,
안정감이라는 가면을 씌워 놓으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이내 본색을 드러내고야 마는 솔직하디 솔직한 불안이란 맨 얼굴.
정든다는 것은 병든다는 것이다.
잠깐잠깐의 훈훈한 정기를 마취제처럼 흡입하며,
병들었다는 사실을 잊고자 한다.
정든 곳이란 상처와 같다.
상함이 거하고 있는 장소와 같다.
그러나 정을 버리고 나면,
비로소, 드디어 찾아오는 한결 다른 안정감이 있다.
거기에는 목욕을 한 듯한 개운함이 있고,
젖은 머리카락을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과 같은 상쾌함이 있다.
정든다는 정황 속에서는 볼 수 없었던 탁 트인 시야가 있다.
김소연/마음사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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